정부 주도 국책 사업으로 포장된 민간 사업자의 기습적인 유료화 통보 사태 전말을 추적하고, 아파트 단지의 전기 사용량 '데이터'가 볼모로 잡혔던 심각한 상황과 정부 개입 과정을 상세히 보도한다.
아파트 관리 현장이 때아닌 '원격검침 무단 유료화' 논란으로 발칵 뒤집혔다. 정부의 에너지 효율화 정책의 일환으로 각 아파트 단지에 보급된 스마트 전력계량기(AMI) 사업자가 돌연 필수 기능을 인질로 삼아 유료 결제를 강요한 이른바 '500원 과금 사태'가 그것이다.16
사건의 발단은 산업통상자원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총괄하고 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이 주관하여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가정용 스마트전력 플랫폼 사업'에서 비롯되었다.16 이 사업을 수주한 A컨소시엄(시행사 B사 등 포함)은 각 아파트 단지에 접근해 "수용가의 별도 비용 부담 없이 최첨단 원격 전력계량기를 설치해주고, 설치 완료일로부터 향후 10년간 무상 유지보수 및 엑셀 다운로드 등 필수 정보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성사시켰다.16
그러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B사는 태도를 돌변했다. 최근 각 단지에 공문을 보내 2026년 4월 1일부로 이른바 '프리미엄 정보서비스'를 신설한다며, 세대당 월 500원의 요금을 내지 않는 아파트에 대해서는 관리주체가 전 세대의 전기 사용량 정보를 한 번에 일괄 엑셀 파일로 내려받는 핵심 기능을 일방적으로 차단해 버린 것이다.16
시스템상 일괄 다운로드 기능이 막히자 일선 관리사무소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수백, 수천 세대에 달하는 계량기의 수치를 관리 직원이 직접 수동으로 일일이 확인하고 타이핑해야 하는 원시적인 수동 검침 시대로 하루아침에 회귀했기 때문이다.16 강원 지역 등 전국 일선 아파트 관리소장들은 "10년 무상 제공이라는 정부 주도 사업의 약속을 굳게 믿고 멀쩡한 기존 계량기를 교체했는데, 독점 권한을 얻자마자 기능을 볼모로 계약을 정면 위반한 기망 행위"라며 거세게 반발했고 대규모 집단 대응에 착수했다.16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주무 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긴급 진화에 나섰다.16 기후부는 B사가 관리주체나 정부 부처와 단 한 차례의 사전 협의도 없이 필수 데이터를 무단으로 차단하고 일방적 유료 전환을 통보한 행위는 중대한 사업 목적 위반이라고 강력히 질타했다.16 부처의 강력한 압박과 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의 경고 문서를 받은 B사는 백기를 들고 차단했던 다운로드 기능을 이달 내에 전면 무료로 원상복구하기로 합의했다.16
기후부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해 "만약 향후 업체가 기존의 기본 서비스보다 현격히 진일보한 형태의 새로운 부가 서비스를 개발하여 유료화를 검토하려 한다면, 반드시 주무 부처와 사전에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고 못 박으며, "아파트 측에는 기존 무상 서비스와의 차이를 매우 명확하게 공지하고, 선택권을 온전히 입주민에게 넘겨야 할 것"이라고 경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16 이번 사태는 아파트 단지 내 공공 데이터의 통제권이 민간 플랫폼 사업자에게 종속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선례로 남게 되었다.


